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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순.아 이야기      l       발자국 소리가 순수한 아이들을 위해      l       '발자국 소리가 따스한 아이들'에게...
인간의 순수한 영혼을 담아내는 화가가 되길 바라며      l       엄마 생각에 내가 뭐가 됐으면 좋겠어?
발자국 소리가 순수한 아이들을 위해
김수연 원장님께서 정신과적 문제를 가진 아동들을 위한 전문 미술교육 이야기를 하셨을 때 두 가지
기억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에 아버지는 경남 고성군에 있는 천주교 사회복지 재단 “예수의 작은 마을”을 만들기 위해 자원 봉사를 하자고 하시며 어린 나를 데려가셨다. 나는 무슨 일인지도 잘 모르면서 삽질을 하고 벽돌을 날랐다. 정의감이 많은 언론인이셨던 아버지는 한 때 해직 기자 생활을 하셔야만 하였다. 본의 아닌 해직으로 시간이 생긴 아버지는 그 기간 동안 천주교 재단을 위해 독지가들로부터 수십만 평의 땅을 기증받아, 호수 옆에 조그만 성당을 짓고 복지시설을 만드는 등의 봉사를 하셨다. 여기에 결핵환자 중 완쾌된 분들의 사회적응을 위한 자활시설과 더불어 정신지체 장애 아이들을 위한 복지시설을 세웠다. 그때 아버지께서는 ‘부모가 죽으면 아이들도 따라 죽는’ 기가 막힌 현실에 대해 이야기를 하셨다. 돈이 있어도 형제나 친척들은 장애인 아이들을 돌볼 수 없어, 부모가 죽으면 얼마 있다가 아이도 따라 죽더라는 것이다. 아버지는 수녀님들이 이 정신지체 아이들을 평생 동안 안정적으로 돌볼 수 있도록 자활시설을 만들었다. 이들을 위한 작업 치료의 일환으로 시작한 진흙 만지기가 도자기 만들기로 발전하여 전국 성당을 순회하며 전시회를 열어 상당히 인기를 끌었다. 그때 도자기 만들기를 비롯한 미술 치료가 아이들과 부모 모두에게 큰 도움이 되었던 기억이 난다.

또 하나의 기억은 존스 홉킨스 보건대학원에서 지역사회 정신의학을 전공하고 돌아온 선배가 보건복지부 사무관으로 근무하면서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는 환자들이 퇴원 후 지역사회에서 일반인들과 어울리며 살아갈 수 있도록 전국에 정신보건센터를 만들고자 했던 일이다. 그때 나도 일익을 담당하여 서울대 보건사업소에서 운영하는 춘천시 정신보건센터를 창립하고 소장직을 2년 동안 맡았다. 정신과 의사, 정신보건 간호사들과 함께 헌신적으로 환자들을 치료하고 재활하도록 돕고, 보호 작업장을 만들어 살아갈 수 있도록 하면서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우고 큰 보람을 느꼈다. 그러나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은 진행하지 못해 환자와 부모를 돌려보낸 안타까운 기억이 있다. 이제는 전국 250개의 보건소마다 정신보건센터가 설치되었고, 여기서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환자들 뿐 아니라, 일반인 중에서도 우울증이나 정서 장애가 있는 분들, 그리고 치매 노인들에 대한 진단과 치료 등을 연계하고 있다.

그러나 점점 늘어나는 자폐증과 우울증 아동이나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그리고 최근에 급속하게 증가하는 게임중독 등의 다양한 질환을 가진 아동들을 위한 시설은 일부 정신과 의원이나 정신병원들 외에는 아직도 찾기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우리 큰 아이와 작은 아이 모두 10년 동안 ‘발자국 소리가 큰 아이들’에 다녔다. 기존 학원들이 단순히 미술의 기술적 재능을 가르치는데 비해, 아이가 가진 창의력을 스스로 표현할 수 있도록 끌어주는 ‘발자국 소리가 큰 아이들’의 교육 방식은 나에게 많은 감동을 주었다. 선행학습을 중심으로 하는 다른 학원들은 오히려 아이의 발달에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모두 중지하였지만 ‘발자국’ 만은 계속 다니도록 하였다.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 뿐 아니라 더 많은 아이들이 그 혜택을 받도록 도와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던 중에 정신과적 문제가 있는 아동들을 위한 미술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고, 드디어 내가 도울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나는 “예술을 전공한 선생님과 따뜻하게 눈을 맞추고, 그림 그리고 만드는 작업과정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즐거움을 느끼는 수업” 을 하겠다는 김 원장님의 뜻이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뜻한 마음과 정성만으로도 소외되고 차별받아온 아이들에게는 큰 힘이 될 것이다. 그림 그리기와 다양한 만들기 작업을 통해 가슴에 응어리 진 것들을 표현하고, 발산하는 과정을 통해 아이들이 분명히 좋아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도 같이 말씀드렸다.
미술수업이 치료적인 효과를 가지고 진행되기 위해서는 의사의 정확한 진단과 의학적 지식에 따른 치료계획의 수립이 필요하다. 미술뿐 아니라 정신과적으로도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선생님들의 참여가 필요하며, 아이의 상태 변화와 수업의 효과에 대해서도 여러 전문가가 팀을 이루어 분석하고 평가하며 체계적인 치료계획을 세워야 할 것이다. 정신과적 문제가 있는 아이들을 위한 별도의 전문 수업이 개설되어야 하겠지만, 집단치료(Group Therapy)나 환경요법(milliue therapy)의 일환으로 일반 아이들과 같이 어울려서 작업을 하는 치료 프로그램도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미술수업이 치료의 일환이 되기 위해서는 학부모가 아이의 상태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부모님과의 상담과 교육이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 또한 미술치료를 통해 개선되는 질환을 가려내고, 대상 아동을 선별하는 것 또한 필요하다. 이것은 차별의 문제가 아니라, 이 프로그램이 더욱 효과를 발휘하도록 하기 위해서 의학적으로 꼭 필요한 과정이라는 것을 이야기해 드렸다. 실제로 정신과 폐쇄병동에 입원해 있는 환자들에게도 미술치료는 정규 치료법의 하나로 매주 시행되고 있다. 또 아동ㆍ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정신과에서도 미술치료가 자주 활용된다.

그러나 급성기가 지나서 퇴원을 하고 나면 이러한 치료 서비스를 받기가 쉽지 않고, 국가 자격이 아닌 분들이 민간차원에서 시행하는 곳들은 다녀 보아도 양질의 치료와 교육이 제대로 제공되는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았기에 김 원장님이 기획하시는 프로그램은 정말 당사자들에게는 절실한 것이다.

먼저 한 곳을 중심으로 정신과적 문제가 있는 아이들을 위한 전문 미술치료 프로그램인 ‘발자국 소리가 순수한 아이들’을 시작한다고 하니, 나도 적극적으로 도울 생각이다. 선생님들에게 의학적인 부분을 교육하는 것에서부터, 입학 대상 아동의 선발과 치료계획의 수립, 그리고 학부모에게 제공되는 의학적 상담 서비스가 내가 해야 할 일이 될 것이다. 이러한 일은 어릴 때 아버지가 하시던 일을 내가 이어서 하는 것이 될 것이고, 정신보건센터의 소장으로서 다 못하였던 일을 마무리하는 작업의 하나가 되었으면 한다.

나는 이러한 일을 통해 듣고 싶은 것이 있다. 이웃과 주위의 눈치를 보면서 차마 큰 소리 내어 뛰어 다니지도 못하는 ‘발자국 소리가 순수한 아이들’이 점점 활달하게 성장하여 마음껏 뛰어다니는 ‘발자국 소리가 큰 아이들’로 발전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잘못이나 유전적인 문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평생을 자식과 스스로에 대해 죄의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이 아이들의 부모님 가슴에 맺힌 눈물을 조금이라도 닦아
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상 구
필자는 현직 의사로 서울대에서 예방의학 전문의 수련을 하였으며, 보건학과 정책학으로 학위를 하였다. 대학원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기다가 한 때는 대통령 비서실의 국장과 집권당의 정책전문위원으로 사회 분야의 정책을 담당하였으며, 보건복지부와 국책 연구기관에서도 근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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